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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터성경사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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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장점이 터진다는게 도대체 뭔가?
우리가 1년, 10년 20년 교회를 출입해도 우리 마음속에는 늘 질문들이 있습니다.
설교를 계속 들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웅크리고 있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크리스천이 되려고 해도 뭔가 모르게 우리를 누르고 있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모르고 있던 내가 갖고 있던 밑받침 사상. 학교에서 배운 정보.
세계관에 비쳐 볼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성경에 많기 때문입니다.
뭔가 성경의 진리로 확 좀 훑어 내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무두룩한 가슴에는 늘 체증이 있습니다.
근원적인 답답함이 있습니다. 휘저으면 질문과 의심의 찌끼들이 떠올라 곧 안개가 끼인 듯 어두워지게 만드는 단골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언지 아십니까? 콜레스테롤성 질문들입니다. 바로 영혼의 핏줄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혈관을 막아버리는 콜레스테롤입니다.
이 콜레스테롤은 고착시켜 버리는 끈끈한 힘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고착되면서 거기가 막혀버리는 겁니다.

창조냐 진화냐? 아담을 흑으로 만들다니 신화 같다!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안 만드셨다면 죄도 안짓고 좋았을 것을.. 결국 죄의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 아닌가?
가인과 아벨 얘기는 또 뭔가? 가인이 만나게 되는 사람은 또 어디서 나왔나? 몇백 년씩 사는건 또 뭘까? 노아혹수는 과학적으로 너무 이해가 안돼!
어떻게 백인 황인 흑인이 노이의 세 아들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인류역사 출발지점은 성경으로 말할 때 어디쯤인가? 아브라함 이야기는 이스라엘 얘기인데 나 한국사람이랑 무슨 관계가 있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종말? 천국? 등등... 흘러가는 성경이야기에서 발생되는 질문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터부시하기도 합니다. 그냥 꽝꽝 믿지 왜 이렇게 의심을 하느냐고 구박(?)받는 분위기이기 때문이 감히 큰 소리로 어디다 물어보기도 힘듭니다.
겉으로는 양성화되지 못하고 속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니 콜레스테롤이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이 성도들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고착시키는 불구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근원적인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절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손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절대자 하나님이 과연 계신지, 그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는데 그게 사실인지, 성경에 기록되기 시작한 스토리라 세계사인지,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왜인지, 스텝 바이 스텝 논리적으로 이어져 나가야 계시록까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독해를 위해서도 진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면서도 교회를 다니는 시간은 늘어가니까 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그런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런 위치쯤 되면 무슨 의심이라든가 질문이라든가 그런 것은 내색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시치미 떼고 교회를 출입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꿰맞춰야 제대로 된 진주(마13.45) 하나를 깨닫는 것인데, 도(道)는 놓치고 교회 생활만 하는 성도를 양성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입니다.
생장점이 터지는 성경일독학교에서... 콜레스테롤을 녹여내야 한다는 거지요.

저는 이런 질문들을 바로 '생장점' 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생장점이란 생물체를 다음 단계로 성장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그 부위가 터져야 다음 단계의 성장이 읽어납니다.
만약 그 부위가 고장나거나 고착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더 이상은 거기가 막혀서 자라지 않는 거지요.
아무리 뿌리가 영혼의 생즙을 빨아올려도, 바로 그 성장 포인트들이 막혀있으니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생장점 포인트가 터져야합니다. 이 질문들이 뚫려야 그다음 단계로 성장한다 그 말입니다.
'터부시되는 질문' 이 바로 생장점 '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막혀있던 '체증부위' (예를 들면 창조, 선악과, 창조시대 부분, 부활, 승천, 재림 등...) 가 성도들의 영적인 '생장점' 부위였다는 말입니다.
거기가 막혀서 답답했고 거기가 막혀있으면서도 안 그런척 하고 가슴 밑바닥에 묻어놓고 예수 잘 믿는 것처럼 지내왔는데, 그걸 묻어 놨던게 문제란 말입니다. 터뜨려야 합니다. 그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이 터지면 바로 거기부터 쭉쭉쭉쭉 새 순이 돋아난다는 말입니다.
진리가 얼마나 체계적인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장점 포인트, 그걸 터뜨려가면서 ' 그래 그래, 그렇지... '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을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 어? 성경이 읽어지네! ' 그런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이렇게 창세기부터 탁,클릭이 되어서 짠-짠-짠-짠- 읽어내려가게 할 수만 있다면 분명히 그들은 성경을 재미있어 할 것입니다.
생장점이 터지는 성경일독학교는 바로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더보기
Q그러니 그냥 같이 죽 읽어 내려가는
성경통독이 아닌 거지요.
여러 교회에서 강의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은 얘기가 있어요. 다 같이 앉아서 창세기부터 주욱~ 읽어 내려가는 통독학교인줄 알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성경일독' 하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가 봅니다. 사실 저는 한국을 떠나오지 13년(2005년 현재)이 되었기 때문에 '성경통독세미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0선교회' 의 목사님께서 방탕한 생활을 하시다가 돌아오셔서 어마어마하게 은혜를 받으셔서 성경 암송을 놀랍게 하시는 세미나가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통 성경통독을 어떻게들 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어쨌든 저는 얼떨결에 시작되기는 했어도 한 가지 생각은 분명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좀 알면서 읽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채 딴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죠.
그래서 그런 스타일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역 예배에 가서 읽은 장수 많이 보고하려는 무저건 읽어대는(?) 그런 통독도 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뭘 좀 알고 읽어야지 내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읽어도 역시 모르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읽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는 일' 이 왜 그토록 안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성격을 읽혀야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즉 진리인 줄 알고 신이 나서 읽는 통독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생장점을 터뜨리며 읽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 세미나는 그저 처음부터 성경을 죽 같이 읽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스스로도 진리에 접속되어서 성경이 이해되면서 읽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좀 성경이야기를 배울 수는 없을까? 있습니다.
대장금도 수십 개 스토리를 보는데 성경도 좀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이 좀 재미가 나야지...

이 성경일독학교 신구약 가의를 다 마치려면 거의 50시간이 걸립니다.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 학교를 시작하려고 할 때는 등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단 한번 결심하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고들 말합니다. 이것이 이 학교의 특징입니다. 세미나를 할 때마다 똑같은 반응입니다. 처음에 느끼는 반응과 시간이 가면서 느끼는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일단 한 번 등록을 하면 그래도 강의 끝날 때까지 잘 듣게 됩니다.
너무 많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요즈음은 설교도 딱 30분, 세미나를 해도 1시간 정도만 흐르면 시계를 쳐다보는 게 현실이고 풍토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가 1907년 초 교회 부흥이 일어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회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날도 이 복음이 준 충격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좀 많이 말씀에 빠져들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한때 '대장금'을 보기 위해 수 십개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놓고 토끼 눈이 되도록 새벽 두 시가 되도록 보고 또 보는게 유행이었습니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왜 복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못 들을까? 만약 이게 된다면 정말 은혜가 아닐까?
적어도 복음을 한 번쯤은 이렇게 미치도록 듣고, 울고불고 해야하는게 아닐까?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하다 보니 이 세미나는 이렇게 끝나는 시간 정해놓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하는 시간은 있는데 뒤는 오픈해놓게 됩니다. 끝나야 끝납니다. 만약 그런데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듣게만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무당도 한 번씩 신이 들리면 밤이 새도록 덩더꿍 덩더꿍을 합니다. 새벽이 되도록 춤을 추며 신을 부릅니다. 하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 하나님을 섬기면서 단 한 번쯤은 이렇게 주의 성령에 붙들려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들을 수만 있다면 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마음이 기뻐서 더 신선하게 생활하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 중앙침례교회(오관석, 오영택 목사님 시무)에서 강의할 때 오영택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밤 10시 30분인데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모님, 지금 집에 가봤자 텔레비전 탁 틀고 보다가 자는 거예요. 그러느니 말씀 더 공부합시다!"
남서울교회도 교회 사상 이렇게 밤늦게까지 강의를 한 적이 없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게 왜 그런가 하면, 찬양하며, 춤추며, 울며, 기도하며, 회개하는 부흥회 스타일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성경일독학교는 딱딱한 세미나가 아닙니다.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관한 찬양을 목이 터져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대덕교회에서 한 노교수님이 선악과 강의가 끝난 후 '문들아 머리 들어라. 왕께 만세' 찬양을 하시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으앙으앙~' 소리 지르며 울던 x 군단 군종들도 생각납니다. 교회 바닥에 물을 엎지른 것처럼 눈물이 고여 있었던 장면도 생각납니다. 드럼이나 쳐 주려고 왔던 한 학생이 엉엉 울며 과거(?)를 회개하던 것도 생각납니다.
말씀 공부하다가 오관석 목사님과 함께 춤추던 것도 기억납니다. 모든 성도들도 함께 뛰며 기뻐 춤추던 것도 기억납니다. 함께 통성 기도하다가 난생처음 방언을 받았다고 흥분해서 얘기하던 소망교회 어느 권사님도 생각납니다.
요한계시록 부분까지 왔을 때 갑자기 어떤 분이 강의 듣다 말고 '으아~ㄱ 크크크...' 하면서 오열을 참지 못하고 괴성이 터져 나오자 그만 강의를 중단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온누리 교회에서였습니다. 그러자 모두 다 함께 마음 놓고 큭큭큭큭 울기 시작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찜질방에서 자고는 또 강의 들으러 오던 광주지역의 어떤 순박한 집사님의 눈물도 기억납니다. 예쁘고 잘생긴 애들을 찾아 이리저리 집적대기 말고 '어딘가에 지금 살고 있을 너희들의 아내, 남편을 가슴에 안고 그들 앞에 순결할 것을 다짐하며 기도하라'고 했을 때 바닥에 내려앉아 진지하고 심각하게 기도하던 대학생 아이들도 생각납니다.

이렇게 울다, 웃다, 춤추다, 회개하다, 찬양하다 하면서 성격을 죽 공부해 나가다보니 그 감흥으로 성경일독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성경일독세미나는 그냥 단순히 성경만 읽게 하는 세미나가 아니라 부흥회스타일의 시경회 성격의 세미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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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수강자들이 가장 많이 뱉어내는 용어
충격 / 꿰진다 / 열린다 / 보인다
강의를 들어가면서 성도들은 반응을 합니다. 가장 많은 반응은 '충격'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충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예수를 믿으면서도 '진리'를 통합하지 못했다가 깨달아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치밀한 영적인 논리가 역사를 타고 흘러내리니 충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조각조각 갖고 있었던 성경이 파편이 하나로 꽉 통합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니 성경이 남의 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인에 대해 이방인인 나에게 탁 코드가 맞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진리에 부딪히니까 그렇습니다. 누군가 앉아서 이리저리 구상해서 꿰맞춘 스토리라고 해도 그 내용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면 감동이 있는데 하물며 창조부터 AD100년에 이르는 역사가 빈틈없이 통합되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진리를 깨달으면 그 진리가 우리의 영적인 체질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감동이 있고 눈물이 찾아오지요. 그 가운데 인생을 사니 늘 만족합니다. 행복하고..... 하나님이 날 사랑한데니 행복안할 수가 있습니까? 맨날 들어도 진짜 그 의미를 몰라서 그렇지. 진짜 성경 전체가 꿰지고, 통합되니까 성경이 이제 열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이고,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고, 이렇게 따로따로 놀았던 지식이 성경을 중심으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지요.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교회를 다녀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 세계관으로 오히려 판단하게 된 것이 문제였습니다.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갖고 있던 사고의 틀이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성경의 내용이 그 세계관들을 깨 주기를 바라며 기다린 것입니다. 성경이 용해되지 않으니까 잘 믿어지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학교 교육을 통해, 또 경험을 통해 매우 논리적으로 구축된 자아인데 그게 어디 쉽사리 없어지지 않지요. 성경이 절대 진리 라는 믿음 앞에서 이제껏 갖고 있던 자기 세계관이 기가 죽어가지고 명쾌한 소릴 내면서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또 학교에서 배웠던 객관적인 자료들이 성경 내용에 착착 틀어 맞는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과학, 역사, 지리, 철학 등 일반학문이 성경의 진리와 '탁' 소리를 내며 통합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물론 다 맞아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믿음으로 잘 통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성경은 드디어 빛이 나는 것이지요. 우리 현대인에게는 적어도 그렇다 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이야 처음부터 야훼 하나님을 생내적으로 아는 환경에서 살았으니 괜찮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안 그렇다 이 말이지요.

성경일독학교에서는 바로 이런 사실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디 만만히 읽어지는게 아니지요. 성경 읽는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배경이 있는데요. 눈 가리고 아웅하며 읽는다거나, 전혀 깨달아지지도 않는데 주문처럼 그냥 읽는다거나 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종교다원주의 타종교 상황속에서 성경의 절대성을 확신케 함

성경을 읽어보려는 오늘날의 성도들은 다 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 배웠던 국어, 국사, 세계사, 지리, 생물, 화학, 철학으로 도수가 맞춰진 안경이지요. 그뿐 아니라 안경은 코팅도 되어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쐬었던 다른 종교들의 콧김으로 코팅된 것입니다. 불교, 유교, 무속, 무교, 자기 주먹을 믿고 있는 동안 코팅이 된 것이죠. 이런 안경을 다 하나씩 끼고 앉아서 성경 뚜껑을 여는 성도들의 입맛을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마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기' 입니다.

먼저 오늘날의 보통 성도들은 성경의 하나님이 온 세상의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처음부터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50년 전쯤만 해도 성도들은 그저 예수 천당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소위교육을 받은 오늘의 성도들은 세상교육과 정보를 통해 세계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종교가운데 정말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만 절대 유일의 하나님이신지 우선 확실히 믿고 싶어 합니다. '신앙' 이라는 트랙의 스타트 선상에서 폼을 딱 잡고 있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출발지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에 접했던 사람들은 덜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교회를 출입하신 분들은 교회에 생전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강단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히브리사람들의 단어들에 귀 설어서 얼떨떨해하던 기억말입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들어야만 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용어를, 예를 들면 갈대아 우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겜, 브엘세마....

그 순간 그들은 설교의 내용보다도 '왜 하필 신은 히브리문화를 쓰는가?' 부터 묻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을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신관이 무엇입니까? 절대자 하나님, 절대진리, 절대개념 자체를 떠밀어내는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이 무드가 베이직입니다. 가톨릭의 신부, 불교의 지도자들은 이미 일찍부터 손을 잡고 평화의 사자들로 한국사회에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조류는 '너희 개신교는 왜 그렇게 편협하고 독선적이냐?' 하는 눈총으로 변환되어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 안에서도 '다른 종교와의 대화?' 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옛날처럼 산맥이나 바다를 못 넘으니까 그것들을 경계로 해서 오순도순 모여 살며 신을 섬겼던 때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다 자기 신들이 진짜 신 인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매스컴이 지구를 한 마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모든 종교도 다 오픈되었습니다. 어떤 한 신(神)을 절대자라고 고집하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종교를 다 인정해야 현대 교양인이 됩니다. 신사적이고, 공평한 태도로 종교를 대하라는 압력이 팽배합니다.

바로 이런 시대 정신을 호흡처럼 쉽게 마시며 사는 분들이 오늘의 성도들입니다. 저녁 식탁에 앉아 텔레비전을 탁 켜면 '새만금환경보호' 등의 뉴스와 함께 스님, 신부, 목사가 벌이는 행진이 화면에 뜹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은 '절대자 하나님이 성경에 나타난 그 하나님' 만이라고 말해주는 목사님의 설교를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입니다. 그들은 확신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경 속 하나님의 유일성을 그들의 이 욕구는 '믿음이 적어서' 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으로 진지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이해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경일독학교를 하고 나면 과연 성경의 하나님만 과연 절대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이 진리를 선포하고 싶어집니다. 더보기
Q강의 수료 후 실제로 성경을 읽도록 도와줍니다.
이 세미나는 성경을 읽자고 하는 세미나입니다. 흥미진진 신이 나서 강의를 듣기 때문에 들은 내용대로 정말 읽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막 성경이 읽고 싶어집니다. 바로 이 기세를 몰아 완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교회가 작전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작전은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짜기 시작하면 이미 늦습니다. 단 하루라도 늦추면 흐지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미나가 시작되기 전에 다 조직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세미나가 일단 끝나면 그 다음 날부터 요~ 이 땅!!
하면서 읽기에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명 정도를 한 팀으로 해서 팀을 만들어주고. 팀장을 정해서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 차원에서 이 팀들을 조직해주고, 관리하고, 또 재조정해주기도 하고, 또 필요한 자료도 공급해주며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요리조리 몰고 나가도록 말이지요

그래서 이 생장점이 터지는 성경일독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도록 미리 아이디어를 주고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이상, '생장점이 터지는 성경일독학교' 가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